폴 란 드

폴란드 크라쿠프 소금광산

청하집 2010. 9. 29. 22:38

 

 

 

 

폴란드의 크라쿠프(소금광산, 바벨성) 입구

 

   폴란드의 크라쿠프(소금광산, 바벨성)

  

        폴란드 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광산
        폴란드 옛 서울 크라쿠프에서 10km 쯤 떨어진 비엘리치카(Wieliczka)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광산(Salt Mine)

  

 ▲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의 역사

 

13세기경부터 본격화한 비엘리치카 암염 채굴은, 이윽고 폴란드 왕국의 경제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졌다.

이 지방에는 이미 석기 시대부터 증류를 통해 소금 결정을 추출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졌었다.

암염 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하자, 폴란드 왕 카지미에슈 2세는 이곳에 견고한 성벽과 요새를 건설하고 채굴권을 독점했다.

14세기이후, 폴란드 왕가는 수입의 3/1을 카르파티아산맥에서 가까운 이 암염 광산에서 채굴되는 암염에 의존했다고한다.

그러나 이 암염 광산은 17세기경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산출량이 매우 적다.

 1289년 슐레지엔의 제후 헨리크 4세가 비엘리치카에 자치권을 부여할 때,

 서류에 이 마을의 이름을 라틴어로 ‘마그눔 잘(Magnum sal)′이라고 기록했다.

 

 이는’ 거대한 소금 ‘이라는 뜻으로, 폴란드인은 그 말을 폴란드어로 그대로 번역해

’ 비엘카 술(Wielka sol)′이라고 불렀다. 훗날 이것이 마을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700년 동안 비엘리치카의 광산 노동자들은 약 2,600만㎢의 암염을 채굴 했다.

9층으로 나뉜 갱 안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갱도가 갖추어져 있는데,

 이 갱도의 깊이는 300m, 총길이는 300km에 이른다.

 

소금광산은 총길이 300여km 중 3 km를 관광코스로 개발해 놓은 것이다.

두께는 무려 500 m~1.5 km까지로 150~200만년전에 오랫동안 바다였던 이곳이 물이 증발한 후에

소금만 남아 암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소금광산은 1996 년까지 700 년 넘게 7,500 톤의 소금을 캐내었으며

 

 본래 지하 1단계(지하 64m, 378계단)~9 단계(327m)까지 개발을 했는데

관광객들에는 지하 1단계(64m)~3 단계(135m)까지만 관광을 허용하고 있다.

 

 

 

 

한편 이 거대한 채굴 공간은 때때로 예배당이나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

왕의 조각상, 난쟁이 조각상, 광산 노동자들의 조각상, 코페르니쿠스의 조각상 등이 있는 작은 방도 있다.

지하 공간에는 강한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보통은, 암염 광산을 유지하고 채굴할 수 있는 기간은 몇 년밖에 안 된다.

그러나 비엘리치카 암염광산은 예외였다. 암염층이 너무나 거대하고 단단했기 때문에 버팀목으로

 지탱해 두면 언제까지나 안전하게 소금을 채굴할 수 있었다.

 

18세기의 ‘폴란드 분할’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된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시찰할 때

 갱 안에 협궤 철도가 부설되었다. 길이가 3km에 이르는 철도를 따라가면 지하 136m까지 내려갈 수 있다.

암염 덕분에 부를 누린 것은 폴란드 왕실만이 아니었다. 광산 노동자도 그 혜택을 입었다.

 1534년 제염업자 세베린 보너는 은을 박아 넣어 호화롭게 장식한 뿔을 이 지방의 광산 노동자 조합에 기증했다.

 

암염 채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폴란드 왕실은 착실하게 광산을 경영했다.

항상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던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은 정성껏 손질되고 복원되었다.

비록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옛날처럼 갱 안에서 암염을 채굴해 생계를 꾸려 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갱도 대부분은 폐쇄되었지만, 일부는 견학용 코스로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으며,

거대한 공간을 보유한 지하 채굴 유적지는 극장이나 카페 또는 우체국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1964년에는 지하 211m 지점에 요양소가 설치되어 기관지 천식이나 알레르기 환자가 요양하고 있다.

주위 암염의 영향으로 갱 안에 세균류가 매우 적고 공기 속에는 소금을 비롯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히 포함되어

있어 치료 효과가 있는 듯하다. 최근 갱 안 일부에 자주 물이 차서,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첨가되었다

 

 

 

 

비알리츠카 소금층은 180만년에서 200만년 전에 형성된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이다.

오랫동안 바다였던 이곳은 물이 증발한 후 소금(염화 칼슘)만 남았고 암염이 되기 까지 약 1만5천년이 걸렸다.

 

그 뒤 발생한 지각변동은 이 소금 층이 복잡해진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진흙과 점토로 쌓인 소금은

지하에 흐르는 물에도 씻겨 나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다. 소금 층은 서에서 동으로 약 10km정도 뻗어 나갔으며

 두께는 500m에서 1.5km에 이른다. 가장 깊은 소금 층은 340m를 내려 가야 한다.

 

처음 378개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64m 1단계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약 3km를 걸어 28개의 방을 이동한다.

현재 소금광산엔 소금을 제거해내서 생긴 2040개의 방이 있다. 모든 방을 연결하는 복도의 길이는 약 200Km에 달한다.

 지하 1단계(64m) ~ 9단계(327m) 까지 다양한 크기와 층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곳은 지하 64m-135m(3단계)까지다. 마지막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올라온다.

내부온도는 항상 14도를 유지 한다. 공기 순환을 위해서 6단계 243m에서 콤프레셔로 통해 지하에 공기를 뿌린다.

통로는 공기 순환 때문에 바람이 세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자동으로 닫히게끔 만든 문들이 있다.

                        

 

 

      

    킹가 공주 동상

 

 1967년 광산에서 가장 오래된 전설인 킹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들었다.

 

13세기 사람인 킹가 공주는 헝가리 왕 베라4세의 딸이다. 공주가 크라카우 공작인 블레 슬라우(볼레 슬라프)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지참금으로 분할 받은 땅 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하길 “폴란드는 부유하고 평화스러운 나라이지만 소금이 없습니다.

헝가리는 소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자 벨라4세는 지참 항목에 ‘마라무레’라는 소금광산을 포함 시켰다.

 

특수한 능력이 있는 킹가는 마라무레 광산에 가서 주문을 외우며 자신의 약혼 반지를 광산 구덩이 속에 던졌다.

그 후에 크라카우에 근처에 이르자 이상한 느낌이 와서 일행에게 구덩이를 깊이 파라고 명하자 수십 개의 소금 덩어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속에 공주의 반지가 발견 되었다. 좀더 깊이 파자 값으로 칠 수 없는 수많은 소금들이 나왔는데,

그 것은 폴란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 이후로 킹가 공주는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킹카  성당

캉카 성당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중반 까지 지은 이 곳은 바닥과 천정 그리고 벽에 있는 조각 등

 모든 것들이 수작업을 통해 소금으로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길이가 54m, 폭은 평균 17m, 높이는 10~12m이다. 약 2만2천 톤의 소금을 제거해서 생긴 공간에 만들었다.

바닥은 지상에서 101m 아래에 있다. 처음엔 다른 수백 개의 방들과 마찬 가지로 빈 공간 이었으나

광산 책임자가 1895년 성당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맨 처음 만든 소금 조각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광부 '요셉 마르코브스키' 였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동안 많은 시간이 걸렸고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광부이면서 예술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10살 아래 그의 동생 ‘토마스 마르코브스키’가 이 성당을 만드는데 동참 했다.

 

 4년 걸려 형 요셉이 만든 주제단과 그 안에 있는 인물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성녀 킹가이며

 역시 반 투명한 소금으로 만들었다. 1920년 형이 죽자 동생은 ‘지상의 소금으로 예수의 일대기를 조각해 보자’ 라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당 벽면을  돌아가면서 작업들을 하였다

 

이 곳은 지하 최대의 예배당으로, 음향 효과가 뛰어나 콘서트가 개최되기도 한다.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 헤롯 왕의 유아 학살, 가나의결혼 등 성서의 장면이 무려 700년에 걸쳐벽 면에 조각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방한 작품도 있다.

 

 

 

 

 

 

 

 

 

  킹카성당 내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 최후의 만찬" 모방 작품

 ‘최후의 만찬’은 2대 광부가 죽자 제3대 광부인  ‘안톤 비로데크’가 1935년에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이 조각의 두께는 20cm  밖에 되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면 전체의 아름다운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요한 바오로 2세 소금 동상

 

 

 

 

 

 

 

 

 

 

 

 

   지하박물관  소금 정제 장면

 

  이 지하 박물관에는 보존 상태가 좋은 오래된 바퀴의 굴대, 수차, 가축의 힘을 이용해 움직였던 권양기 등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몇 세기에 걸쳐 갱도의 조명, 환기, 공기 정화 등의 설비가 서서히 갖추어진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이윽고 광부들은 갱 안에서 암염을 반출할 때 광차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광차는 처음에는 사람이 끌었지만 나중에는 말을 이용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방

 
가장 유명한 방문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1493년 크라카우에서 공부를 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소금광산으로 여행을 했다.

 

1973년 전세계가 위대한 천문학자의 탄생 500주년 기념을 할 때 비알리츠카 광부 들이 초라하고

오래된 방에 4.5m의 소금기둥으로 둥근 지구를 손에든 코페르니쿠스 조각을 세웠다

 

 

 

 

 

망아지를 이용 소금 퍼올리기

                                                       큰말은들어오지 못하므로 망아지를 이곳에 가져와  큰 말이 되면 소금을 운반하는데 사용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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