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라 도

전주 전동 한옥마을

청하집 2011. 2. 11. 22:05

    

  

                       오목대 언덕에서 내려다본 전주한옥 마을

 

전주 한옥마을 면적은 7만 6320평, 전주시 교동(풍남동() 일대 700여채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

전통 한옥 외에 판소리·춤·타악 등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전통문화센터, 전통 술인 막걸리·

 

청주의 제조과정 관람과 시음까지 할 수 있는 전통술박물관, 숙박을 하면서 온돌과 대청 마루등

 한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옥생활체험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殿:사적 339),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연회를 열었던 오목대, 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 등이 있다.

그 밖에
동학혁명기념관·흙담집·전통도예관·온고을소리청·향교·서예관·전통다원,

여행자들의 숙박시설인 양사재()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전주시에서는 한옥마을의 관광지화를 위해   은행로~승광재 구간에는 골목장터와 직거래장터를 만들어

 한옥마을 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수공예품과 생활용품을  사고파는 문화공간으로......

 

   경기전과 명품관 주차장, 은행로 쌈지공원 등지에는 상설 공연장을 만들어 시립예술단과 

  전주시내 100여개 예술단체, 동호인이  두루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인다.

   가마체험과 벼슬놀이체험, 청사초롱 소원빌기. 썰매대회, 비빔밥축제 등 한옥마을의

   특성을 살린 소규모 마을축제도 열린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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