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대제의 종루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의 동남쪽에 있고 크렘린이 중앙에 서있다. 15세기 초기에 본체, 중엽에 팔면체의 종루를 첨가하였다.
1600년 금색 돔의 3층 탑이 완성되었다. 약 80m 높이의 탑은 완성 당시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았 다.
약 30㎞ 서쪽을 멀리보는 군사적인 감시탑의 역할도 했었다. 적의 습격 을 받게 되면 종루의 종이 울리게 된다. 2개의 종이 있고
가장 무거운 것은 70t이나 된다. 나폴레옹 군대는 종루를 폭파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일부파 손된 것이 남아 있다.
레닌의 묘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묘는 그가 죽은 1924년에 설립되었다. 당초에는 목조였으나 1930년 현재의 암적색의 화강암으로 재건축됨
레닌의 시신이 유리케이스에 안치되어 있고 서쪽에 호위병이 서있다. 참배는 조용히 해야 하고 멈추어 있으면 안된다.
묘 위 계단식의 단은 국가 수상이나 외국의 각료가 서있던 곳이다. 최근 묘의 철거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토요 일과 일요일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참배객이 장사진을 이룬다. 묘에는 카메라나 가방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
모스크바 붉은 광장
크렘린 성벽의 동측으로 넓게 있는 러시아 최대의 광장이다. 노동자의 날 인 메이데이나 혁명기념제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모스 크바의 상징이 된 장소이다. 붉은 광장의 '붉다'는 아름다운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광장은 15세기 말 큰 화재로 주변의 목조가옥이 전부 타버리고 그 위에 세운 것이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당시 20만명의
인구가 있던 모스크바의 정치, 상업의 중심이 되었다.
밀집한 노천시장이 점차 정비되어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의 광장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19 세기 말부터 이다.
1917년 혁명기념제 등 수많은 역사의 무대가 되었다.
오른쪽 건물은 모스크바 굼 백화점
성 바실리 사원
광장의 남단에 있고 둥근 양파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는 화려한 사원이다. 붉은 광장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아름다운 러시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사원 은 근처에 있는 고딕 양식의 탑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이상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7세기 중엽 이반 황제가 '칸' 왕국을 합병하는 것을 기념 하고 오래된 트로이카 사원을 새로 건축할 것을 명령해 '포스토닉 바르마가 설계하였다.
완성된 사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을 만들지 못하도록 건축가 두사람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전승기념일이 성모수호제(바쿠로프)에 해당되므로 정식 명칭은 바쿠러프스 키 사원이지만 민중의 존경을 받는 수도사인 바 리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성 바실리 사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원에는 2개의 십자가가 교차하는 곳 에 중앙예배당이 있고 주변의 대각선상에 8개의 예배당이 있다. 이상한 것 은 9개의 예배당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8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 현재 박물관이 되었지만 예배도 보고 있다.
舊레닌 언덕
1935년 이전 '참새의 언덕'이라는 의미의 이름에 근거한 언덕으로 옛부터 시민의 산보 장소 애용되어 왔다.
전망대에서는 시내의 풍경이 보인다. 멀리 우측의 크렘린 사원, 발밑의 레닌 중앙스타디움,
우측의 고리키 공원, 앞에 우크라이나 호텔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는 외국인 관광객 뿐아니라 신혼부부도 찾아온다. 전망대 좌측에는
러시아정교의 트로이카 교회가 있고 그곳에는 현재도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모스크바 종합국립대학
舊레닌 언덕을 뒤로 하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1953년 완성된 모스크바 대학이다. 스탈린 시대의 자취로 흔히 부르는
'스탈 고딕'(모스크바 시내 에 7개가 있다)의 대표작이다. 중앙부의 탑에는 2t의 별모양의 돌이 있다.
건물의 높이는 240m, 면적은 320㏊. 32층의 중앙부가 대학본부이고 18층과 12층 건물이 교사와 학생의 기숙사이고
방의 수는 6,000개다. 시내 중앙 에 있는 舊교사의 인문학부를 포함해 이공과계 14학부가 있다.
예과코스에 는 90개국에서 3,000명 이상의 유학생이 수학하고 있다. 학생 총 수는 3만 2,000명이다.
학사 8,100명 이상, 그 위에 1,000명 이상이 박사학위 소유자 나 교수이다.
구내는 설비가 잘 정리되어 있어 대학로의 느낌이 든다.
건물 이 X자형의 대칭형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4개의 출입구로 헤매지 않고 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대학의 창립자인 모포나소프의 동상이 있는 곳이 남 쪽 정문 앞이고 그 반대편 북문이 舊레닌 덕을 향하고 있다.
구관은 시내중앙의 마하바야 거리와 큰 니키츠카야 거리의 모퉁이에 있다.
18세기 후반 러시아 최대의 건축가 카자코프의 설계로 러시아 고전 스타일 의 황색과 나이루그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당초 붉은 광장의 북단에 있는 역사박물관 장소에 있었으나 후에 여기로 이전되었다.
크렘린
'크렘린'이란 본래 성벽를 의미하는 러시아어다. 러시아 각지에는
여러 가지의 크렘린이 사적으로 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이 모스크바의 크렘린이다. 12세기 초기에
대공 유리 도르코르키가 모스크바 강과 네그린나야 강의 합류점에 목조성벽을 건축하였다.
총 면적은 28만㎢, 성벽의 높이는 5∼19m, 全長은 2.2㎞였다.
내부에는 러시아 건축의 세련됨을 모은 궁전, 교회, 사 원 등이 있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긴 역사를 통하여 서서히 확대되어 황 제의 성으로 번영해왔다.
황제는 자신의 거대한 권 을 이용하여 크렘린 안 에 다양한 건축물과 보물을 남겨놓았다.
본래 크렘린은 북서쪽의 한 면은 네그린나야 강, 북동쪽의 한 면은 해자,
남쪽의 한 면은 모스크바 강이 둘 러싸고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네그린나야 강은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아래 로 흘러가고 해자는 매몰되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모스크바 강 뿐이다
모스크바 LG다리
전승기념탑
1985년부터 199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전승 50주년을 기해 '전승기념관'을 완공했다고 합니다.
기념관 앞에 있는 이 '전승기념탑'에는 러시아 승리의 신 '게오르기'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격전지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승기념관 2층 중앙 홀에는 전승 50주년을 기념하여 정부에서 제작한 칼과 방패가 있으며,
39년 독소 불가침 조약부터 일본의 항복문서 등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층 중앙 홀은 지름이 50m나 되는데, 약12만명의 훈장 수여자들의 명단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앙홀로 연결되는 복도 양 측면에 각각 4개의 유리박스가 있고 그 안에는 매우 두꺼운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 두꺼운 책자가 전쟁 사망자 명단이라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수가 2천4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한반도 인구와 맞먹는 사망자 숫자 입니다.
독일군 사망자 수도 몇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고 참혹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여개 전쟁 참가국 전체 사망자의 60%가 소련인이었으며,
2차대전 중 독일군 사망자의 80%가 독소 전쟁에서 발생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진을 다 빼고 패퇴한 독일군은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또 한 번의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어 전쟁에서 지고 맙니다.